<믿음안의 시련>
청소년상담심리전공
20120941
김주성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 1독을 한 번도 못해봤다. 어떠한 계기로 큰 결심을 하여 성경읽기를 시작했다. 작년부터 시작하여 신약을 다 읽고 구약을 읽고 있던 중에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셨다. 그것이 ‘욥기’다. 마침 읽지 않았던 부분이라서 성경을 읽으며 공부를 할 수 있는 반가운 과제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교수님께서 ‘욥의 자살생각’을 중점적으로 읽어보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읽던 느낌과는 조금 다른, 진지하고 분석적으로 읽기를 시작했다.
욥기1~3장, 재산도 많고 자녀도 많던 욥은 부족함 없는 생활로 행복하게 살다가 하나님과 사탄에 대화 끝에 시련을 받게 된다. 가족들이 죽고 아내마저 욥을 등지지만 어떠한 고난에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사탄의 저주로 온몸에 종기가 나서 너무나도 괴로운 나머지 죽으면 얼마나 편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욥이 아직 친구들을 만나기 전, 욥의 생각과 주님께 기도하는 그 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엔 욥이 자살하고 싶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욥은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 주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한 이유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것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가족들이 사고로 죽은 것에 대해서 슬픔이 있고, 이어서 온몸에 종기가 났을 때, 욥은 그 두 가지 사건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나타났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죄가 없고 주님 안에 깨끗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벌을 내려주는지에 대해 깊은 원망이 생겨났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표출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한 욥은 결국 그런 감정들을 표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매김 함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되고 그 결과 ‘차라리 죽여주세요.’ 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죽어서 생기는 외로움도 있을 것이다. 지킬 자녀들이 있었다면 아무리 몸이 괴롭더라도 자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이 너무 괴롭고 힘든데 모두가 접근하기 꺼려하고 가족들마저 없는 상황이라 기댈 사람이 없었고, 죽어서 ‘천국가면 모두 만날 수 있을 것’ 이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욥기4~21장, 이 구간에서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다루었다. 3장에서 잠시 나왔던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당한 모든 재앙을 듣고 집을 떠나 욥을 위로하기로 했다. 근데 욥을 만난 친구들은 욥에게 위로를 하기 보다는 충고를 하면서 욥을 더 괴롭게 하고 만다. 처음에 친구들이 욥을 봤을 때 크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위에 뿌림으로써 슬픔을 나타냈다. 나는 그때 ‘욥이 정말 바르게 살아서 좋은 친구들을 두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마치 ‘우리는 이렇게 바르게 사니까 주님의 재앙이 없는 것이네. 자네는 회개를 해야하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한 친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세 친구 중에 한명인 엘리바스는 “모든 사람은 고난을 받는다. 회개한다면 주님께선 용서해주시니 회개하라” 라고 말한다. 원래 사람은 예민하거나 괴로울 때 모진 소리를 하게 된다. 욥은 충분히 괴롭고 힘들고 지친 상태였고, 또 주님 앞에 당당하다는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충고만 늘어놓는 엘리바스가 미워서인지 엘리바스에게 충고하지 말라며 모진 말을 하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과 울분을 토해낸다. 그 울분을 듣고, 세 친구중에 한명인 빌닷은 “언제까지 그런 말을 계속할건가? 자네 자녀들이 죄를 지었으니 주께서 벌을 내렸을 게 뻔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며 욥을 다그친다.
욥기 9장에 보면 “나 비록 죄가 없다 하여도 그는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하시겠고 나 비록 흠이 없다고 하여도 그는 나의 마음바탕이 틀렸다고 하실 것일세. 나 비록 흠이 없다고 하지만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네. 살아 있다는 것이 구역질 날 뿐.”(하정미. Daum블로그. “욥기 시나리오 현대적 재구성” 2012.07.04. p6. 인용) 욥은 하나님을 높이면서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있는지도 모르고 왜 하나님께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층적으로는 답답한 것을 넘어서서 울분의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 스스로에 대한 분노도 느껴진다. 세 친구 중 마지막인 소발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그의 큰 뜻을 어떻게 자네가 알겠는가? 마음을 바르게 먹고 회개만이 답일세.” 라는 식으로 말한다. 여기서 아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 처음에 위로하기 위해 왔던 세 친구들은 왜 위로가 아닌 말로 욥을 더 힘들게 했을까?
첫째로, 사탄의 시험이다. 세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고 그것을 이겨냈다면 그건 하나님의 시험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욥을 더 괴롭게 하고 여기서 욥이 이겨내야만 하나님의 시험에서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욥의 모습을 본 세 친구들의 변화된 심리이다. 처음에 욥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며 옷을 찢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자신들도 저렇게 벌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고 그 결과 위로가 아닌 충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위안 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욥에게 말을 하면서 ‘나는 믿음생활을 잘해왔어.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높이고 욥을 비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욥의 감정이 내 가슴에 확 다가와서 너무 안타까웠다. 교수님께서 번역해주신 것은 21장까지밖에 안나와있어서 욥의 결말을 알 수 없었기에 결말이 너무 궁금했던 나는 결국 쉬운성경을 펼쳐 욥기를 끝까지 다 읽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욥의 앞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욥에게 질문을 던진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친구들과 논쟁하고, 하나님을 비난했던 욥을 혼내고 결국 욥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회개하게 된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에게 큰 화를 내며 그들에게 번제를 받치게 하고 욥에게 기도를 받으라고 한다. 욥은 하나님께 전보다 2배나 되는 복을 받고 이전보다 더 큰 부자가 되며 일곱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을 낳는다. 그 후 욥은 백사십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표면적으로는 욥을 혼내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욥에 대한 사랑으로 보였다. 그 결과 세 친구들을 크게 혼내고 욥에게 기도를 받으라고 하는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욥은 결국 자살하지도 않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았다. 그 순종이 정말 대단했고 그리스도인이 닮아가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 성경에 나와 있는 욥과 세 친구들을 분석했다면, 현대에 이르러 욥과 같은 내담자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상담을 해줘야 할지 욥의 친구들의 행동과 비교해가며 알아보자.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위해 달려와 같이 슬픔을 나누었다. 그것은 공감이며 세 친구들이 가장 잘한 행동이다.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을 표현하는 로저스의 인간중심상담기법(하정미 외, 2012)에서는 비심판적인 태도를 강조하는데, 나도 내담자인 욥이 자신의 고민을 얘기 해 줄때 경청하며 욥을 수용해 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초기에 라포형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벡의 인지치료이론(하정미 외2명. 2012. “자살생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영적 레질리언스 : 사회복지 실천적 관점에서 욥기 내용분석.” p57. 부산장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겸임교수. 부산. 9월)에 의하면 "우울한 자는 인지삼제, 즉 자신과 세상과 미래에 대해서 모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욥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여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든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원했지만 그의 친구들은 오히려 몰아붙이기만 했다. 그로 인해 욥을 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다.
사회복지 실천적 관점에서 원조관계의 기본원칙(하정미 외, 2012)인 통제된 정서적 관여, 수용, 비심판적태도가 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심판적인 태도로 바라봤다. 나는 내담자를 대할 때 비심판적인 태도로 대할 것이며, 세 친구처럼 다그치는 어조가 안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담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다. 하지만 세 친구들은 통제된 정서적 관여를 해야 하는데 욥의 감정을 공감하기는커녕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서 오히려 더 화를 내고 있다. 나는 욥의 말 속에 느껴지는 감정들을 민감하고 공감하는 태도로 반응할 것이며, 과장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히 대응할 것이다. 또한 욥을 그대로 수용해 줘야 하는데 세 친구들은 설득하려고만 들었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록 욥의 말이 내 생각 및 가치관과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과학의 발달로 ‘알파고’ 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나와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작은 병원들이 사라지고 기계로 자신의 증상을 적으면 약이 나오는 시스템이 적용중이라고 한다.(양재욱, 2016) 이처럼 수백개의 직업들이 사라져 나가고 그 자리를 기계들이 차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상담사의 직업도 기계로 대체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증상을 적으면 약이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 같은 경우 치료를 위해서는 약이 아닌 ‘공감’이 필요하다. 이런 시기에는 무늬만 상담가인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깊게 공부하여 우리들의 자리를 기계가 대체할 수 없게끔 해야 한다. 직업의 가치는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한 말에 당당해지는 것이 나의 새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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