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집단 내에서의 두려움과 희망에 대해서.
김창대 역
1) 집단내에 존재하는 정서지향은 개인의 정서를 형성하는 역활을 한다.
- 정서라고 하는 것은 전염됩니다. 특히 지배적 정서라고 할 수 있는 두려움과 같은 일차적 정서에 영향을 강하게 받는 개인이나 집단일 경우는 특히 그 전염이 빠르고 강하며 집단적 정서지향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집단적인 정서의 지향은 또 다시 개인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는 끝없이 정서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예)
2) 집단정서지향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3가지 요소.
ㄱ, 공통된 경험들: 한국인들은 모두가 전쟁이라는 위협을 집단적인 무의식으로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들 보다 더 왜곡되게 사건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이전의 경험들은 우리가 직적 겪었든 겪지 않았든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줍니다.
ㄴ, 사회화: 집단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정서의 지향성을 전파시킬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회의 영역에서 교육과 사회화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ㄷ,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정보, 지배적 담론. 상징, 모델, 권위의 근거한 지식, 가치, 묘사서술, 신념, 태도, 영향력, 학습등에 노출된 사회적 상태. 더 간단히 말해서 사회가 어떤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3) 집단정서지향의 3가지 모습
ㄱ, 정서적 분위기(기류): 특정한 사간을 경험한 결과로써의 경험적 반응. 그리고 그 감정의 상태가 사회 전체에 전파되게 되면서 집단의 정서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류가 사회 전반에 짙게 깔리게 되면 집단은 알 수 없는 두려움, 긴장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ㄴ, 정서적 환경과 구조적 환경: 어떤 경험으로 인한 특정한 정서가 오랫동안 지속되게되면 이에 기반한 사회적 구조와 정책적 특성을 사회가 가지게 됩니다. 두려움과 위협은 사회에 큰 갈등으로 작용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응적 행동을 하고 이 갈등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정책과 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데 민족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정부 정책과 구조는 외부집단이나 갈등에 대한 적응적 방법으로써 한 사회가 채택한 대처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ㄷ, 정서적 문화: 한 사회가 지니는 집단정서지향이 오랫동안 유지되게 되면 그 사회의 문화 전반에 깔리게 됩니다. 한국인이 가진 전쟁과 숱한 외부세력의 침략이라는 사건은 우리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짙게 깔려있으며 이런 모든 양상들이 우리 문화에 반영되어있죠. 예컨데 빨리빨리 하려고 하는 거, 내가 필요한 만큼보다 더 많은 양을 챙기는 것, 집단에 동화되기를 강요하는 것, 어버이를 머리로 여기는 것 등등은 집단정서지향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되면 그 문화적 흐름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화하려면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세대가 계속 나타나야 하지요.
4) 이 이론에 들어가기 전, 알아두어야 할 강조점
ㄱ, 사회 구성원들은 집단정서지향에서 오는 경험을 오랫동안 겪습니다.
ㄴ. 정서는 사회적, 문화적, 정책적, 교육적 채널에서 개개인들간의 의사소통의 장, 그리고 사회적 구조와 정책, 매체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전파되고 유지됩니다.
ㄷ, 사회 구성원들이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 이에 따라 새로운 매커니즘이 형성되고, 이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 신념의 변화로 이어질 때에 비로소 집단정서지향이 바뀔 수 있게 됩니다.
5) Smith 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
ㄱ,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험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하나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S는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정서, 그리고 상호작용등이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ㄴ,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에 존재하는 개개인들은 한 사회의 집단 구성원으로써 특정 사건을 해석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의 결과로 그들은 그 상황으로 부터 나오는 특별한 정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아무리 내가 이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집단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이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던 개인은 한 집단의 평가와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영향을 받게되고 결국은 그 집단이 가지는 정서, 사고, 행동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군대의 예)그렇기 때문에 집단 전체가 왜곡된 평가와 해석을 가지게 된다면 사회 구성원들 역시 왜곡된 사고,행동의 포메이션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ㄷ, 생각해봅시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가 특정 집단에 들어가 적응하게 된 상태로 그 집단에 떨어진 상황에 맞딱뜨리게 될 때, 우리는 사회에서와는 다른 정서를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사회라는 집단에서는 맞다고 할 수 있는 것도 군대라는 다른 집단에서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는 것처럼 개인의 정서와 사고와 행동은 그 집단이 가지는 매커니즘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집단정서지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요소들
1) 집단정서흐름의 기원,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
- 집단이 경험하는 정서는 사회적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집단의 정서가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이 정체성이 다시 집단의 정서에 영향을 주는 구조. 그런데 여기서 정서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특정한 뭔가를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이전에 했던 경험이 결국 특정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신념과 문화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험은 개인적으로 우리가 경험을 한 경우,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경우로 나눌 수 있어요. 지진, 자연재해, 전쟁, 경제적 대공황과 같이 실제적이고 눈에 보이는 위협적 사건들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두려움, 공포, 불안을 느끼게 되지요. 이같은 직접적 경험이 특정한 정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지요.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그 사건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에서 나오는 집단정서지향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세월호를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직접 그 세월호의 아이들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까? 아니죠. 그렇지만 그 사건으로 부터 나오는 강력한 정서를 우리 사회 전체가 겪지 않았습니까? 이는 직접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건을 기반으로 한 정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어떤 집단 구성원이 경험한 사건이 존재할 때, 그 사건이 점점 전파되고 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세월호 등등의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정서들을 떠올려보세요.
2) 보급, 유포, 전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직적 경험한 사건이 아니라도 우리는 그 사건에서 나오는 정서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는 그 정서가 사회의 의사소통 창을 통해 전파되고 유포되기 때문입니다. 전파, 유포, 보급. 이는 가장 강력한 집단정서지향형성의 원인이지요. 이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서, 사회적 절차를 거쳐서, 심리학-생물학적 통로를 통해 전파됩니다.
이같은 정서전달은 무의식적 수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은 이전에 겪었던 도망자와 같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아직까지 유대인들은 그러한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집단적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가진 돈의 대한 관념, 행동방식은 사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역사의 반영적 결과입니다. 이처럼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특정 경험의 대한 집단정서지향은 계속 전파됩니다. 이같은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나는 집단정서지향의 전달은 자동적, 자발적이며 높은 정신적 과정에 기대어있지 않습니다. 즉 너무도 쉽고 저연스럽게 전파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두려움이라는 정서역시 일차적 정서이며 우리의 경험과 사고에 선험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무의식의 영역에서 진행되는 전달이 강한 것입니다. 이러한 선험적 정서는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정형화된 행동의 패턴이 존재하며, 만약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본능적이고 선험적인 무의식의 과정에 따라 사고하고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무의식적 정서전달을 받을 때, 무의식적 모방이 일어납니다. 예컨데 이런 거죠.메르스로 인해 사회 전체가 질병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왠지 우리도 마스크를 써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러한 마스크를 쓰는 행동은 뭔가 사회에 우리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요소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게 되겠죠. 이같은 행동의 모방은 더욱 무의식적 정서전달을 강하게 만들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방은 사회 전반에 계속 일어나게 되겠죠. 무의식적인 집단정서지향은 대인관계의 소통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채널에 의해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채널에서 전파되는 정서적 정보는 그 정보를 전파한 전달자들의 표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집단정서지향은 무의식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구조나 가치,신념,이데올로기와 같은 체계를 통해서도 전파되지요. 이를 통틀어 우리는 신념이라고 해봅시다.
신념은 믿는 바, 믿음 이라고 할 수 도 있는데요. 중세에 그들이 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념이 있었죠. 그런 신념은 분명 왜곡된 것이였습니다. 왜곡된 의식적 신념은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현상을 만들었죠. 그들이 믿는 바, 신성을 모독하고, 가뭄을 일게 하고,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모든 원인은 마녀였습니다. 모든 것을 그들의 책임으로 돌린거죠. 이는 무의식적 과정이 아니였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들은 실제로 그러한 관념을 믿었고 신념을 가졌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런 말도 안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두려움을 의식적 신념에 기반한 마녀라는 존재에 투영시켜 그 불안을 해소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 사회의 신념, 라벨, 슬로건, 고정관념은 그 현상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정체성, 신념등에 의해 자동적으로 흡수된 현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신념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신념에 대한 숙고가 없을 때 정서는 그저 인식과 정서와 감정을 통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즉 신념이 어떤 현상의 대한 자동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후 신념의 대한 심사숙고, 분석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한 현상의 대한 걸러진 정서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즉 신념 그 자체에 대해 의식적으로 추론해본 결과로써 나타나는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신념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사회의 지도층 계열, 높은 위치에 속한사람들인데요. 성직자, 지도자, 교육자, 문화, 메스미디어, 부모와 같은 존재들이죠. 이들이 신념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이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권위, 위신, 전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이들의 표현과 주장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신념을 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되고, 그에 따른 행동과 사고의 매커니즘이 결정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같은 정서전파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살펴볼까요?
1, 특정한 정보와 감정을 전파합니다.
2, 정보선택에 필요한 방법이나 기준들을 공급하면서 차례차례 정서를 전파시킵니다.
3, 상황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영향을 줍니다. 여기서 왜곡이 일어나게 되겠죠
4,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정서는 무엇인지의 대한 신호를 보내줍니다
5, 어떻게 그 정서와 감정이 표현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5단계의 대해서, 중세 십자군 전쟁의 예가 적절할 것이다. 성직자들은 이교도에 의해 기독교의 성지가 무너져내리면서 우리가 바라는 천국이 무너져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줌을 통해 분노라는 감정이 존재함과 동시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존재함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선택해야 하는지의 대한 표준을 전파하면서 서서히 감정들을 전파시킨다. 이제 이교도의 이스라엘 탈환이라는 상황에 대해 더욱 과장되거나, 혹은 왜곡되게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제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을 취해야 하는지의 대한 것을 가르친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를 할 것이다. “우리의 성지는 이제 저 이교도들에 의해 무너지고, 짖밝혀버렸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를 탈환하라고 한 신호이다. 이제 우리는 마땅히 우리 하나님이 계신 저 성지를 짖밝은 추악한 이교도들의 대한 분노와 치욕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노를 가지고 그들을 몰아내고 다시 우리의 성지를 탈환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다.
3, 사회적 신념의 무서움
- 사회적 신념이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게 되면 이제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리잡은 신념은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정서의 경향 그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특정 사건의 대해 가지는 그들의 정서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이루게 만든다는 것이죠.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각 나라마다 해석과 평가,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정서가 다른 것도 이처럼 사회적 정체성, 신념, 이데올로기기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신념은 사회 구성원들 개인의 신념으로도 이어지게 되면서 그 신념이 더욱 강력하게 되지요. 이 신념은 개개인들이 현상을 바라보는 프리즘 역활을 하게 됩니다. 즉 관념체계, 의식과 인식체계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에 따라 그들은 사고, 행동의 매커니즘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신념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번 사회적 신념으로 자리잡게 된 매커니즘은 정말로 바꾸기 어렵고, 만약 신념 자체가 왜곡되게 된다면 그에 따라 왜곡된 사고,해석,평가,행동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신념의 무서움입니다.
4, 집단적 정서지향의 사회화, 학습
- 이같은 신념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습득하는 학습과 사회화를 통해 계속해서 유지됩니다. 이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의 기준을 계속 전파하는 것이죠.
5, 어떤 정서지향이 존재하는지 알아내기 위한 기준들
1, 이 정서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2, 그 정서는 사회적 담론, 그리고 구성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신문, 매체, 방송, 대화등에 자주 등장하지요
3, 책, 영화, 게임과 같은 문화상품에 이같은 특별한 정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컨데 메르스가 사회적 갈등으로 떠올랐던 그 때, 질병으로 인한 문제를 다룬 영화, 예컨데 ‘감기’, 문학작품등이 많이 등장했었지요.
4, 학교와 교육적 채널에서 이같은 정서를 계속 전달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굉장히 단단하게 우리의 기억과 사고, 그리고 사회적 기억속에 박혀있습니다
6, 정책의 결정, 구조형성등에 이같은 정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3, 다루기 어려운 갈등상황에 놓여있는 집단내에 존재하는 집단적 두려움의 흐름에 대한 지배
-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은 집단적인 두려움의 지향의 대한 위험을 증멸한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많은 생명을 빼았아가고 파괴한 이 사건은 두려움의 범위를 더욱 크게 만들어 전파했으며 이러한 두려움이 집단의 특성으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이처럼 아주 다루기 어려운 갈등에 놓여있는 집단은 집단적정서지향의 형성에 강한 영향을 받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루기 어려운 갈등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다루기 어려운 갈등의 특징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신체적 학대, 빈곤, 고통, 끝없는 잔학행위들, 이러한 갈등들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기대할만한 결과의 산출이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이러한 갈등들은 우리들의 인식에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우리는 많은 NGO의 광고를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이 겪고있는 빈곤과 고통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공감한다기 보다는 동정합니다. 즉 그들의 고통은 안타깝지만 우리의 사회는 누군가는 빈곤하고 누군가는 부유하다, 따라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전쟁, 폭력등도 마찬가지이죠. 우리사회에 이같은 갈등은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가 원래 그런거지 뭐”라고 하는 거죠.
특히 이러한 갈등들은 우리가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와 가치를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끊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예컨데 자유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구중 하나며 이를 위해서 인간은 끝없이 투쟁하고 싸웁니다. 이같은 갈등은 정말로 해결하기가 어렵지요.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서 끝없는 투쟁이 발생한다는 것은 결국 끝없이 기본적인 욕구를 억압하려는 요소가 사회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2) 이같은 갈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
-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갈등들은 개인, 집단에게 두려움, 분노, 증오, 부정적 정서를 전파합니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아 사회구성원들은 동일한 정서를 느끼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지속적으로 깔리게 되면서 하나의 집단정서적 분위기, 기류, 대기를 형성합니다. 즉 개인이 느끼는 부정적 정서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그 사회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구성원들은 더욱 강하게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요.
3) 갈등이 집단적 두려움으로 발전하는 과정
ㄱ, 스트레스적인 상황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그 갈등에 존재하는 특정 정보를 선별적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위협적이고 위험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한 가지 부분만 부각되게 되면 전체적인 이해가 어렵게 될 것이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되겠죠.
ㄴ, 이같은 갈등으로 인한 두려움은 사회의 문화적 상품들에 고스란히 담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구성원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겠죠. 어찌보면 예술계에서는 이같은 갈등이 창조의 영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ㄷ, 지속적으로 사회적 담론과 커뮤니티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ㄹ, 결국 이같은 과정을 통해 왜곡된 정서가 지속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비옥한 환경이 조성되게 됩니다. 즉, 부정적 집단정서의 발전이 뿌리를 내리기에 최적화된 환경으로 변하게 된다는 거죠. 경험, 문화, 커뮤니티, 담론, 바로 이것들이 더욱 부정적 정서를 키워내는 거름입니다.
4) 부정적 사건의 강력한 영향력: 적응적 행동
-사람이 부정적 경험을 하게 되면, 이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기 위한 적응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만약 우리가 칼에 찔리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럼 우리는 이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거나, 약을 먹거나, 입원을 하거나, 휴식을 하는 등의 적응적 행동을 하게 되겠죠. 이처럼 부정적 사건에는 이에 적응하기 위한 적응적 행동이 동반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 축적된 증거들은 우리에게 부정적 사건과 정보, 기억들은 더욱 잘 기억되고 집중된다는 점과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이 어떤 것의 대한 평가, 판단, 행동의 경향성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부정적 사건과 정보는 일종의 편견을 만들어내고, 일반적 사건에 의해 생겨난 것보다 더욱 집중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부정적 동기를 만들어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지요. 그리고 이같은 부정적 동기는 자동적인 평가과정에서 나타납니다. 쉽게말해 성추행을 당한 여성이 있다면 이 여성은 남성의 대한 부정적 편견이 존재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의 부정적 동기를 주어 모든 남성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과정은 이 여성에게 있어서 부정적 사건과 기억에 적응하는 적응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만약 사회가 부정적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이에 기반한 부정적 편견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평가를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이같은 절차는 과거 부정적 사건의 대한 적응적 행동이지요. 바로 이것이 부정적 사건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한번 부정적 사건을 경험한 사회는 그 경험 때문에 그와 비슷한 경험에 있어서도 동일한 반응을 하게 되겠죠. 이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매커니즘을 막을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나치의 반인륜적인 행동은 그 당시에는 나치가 자신들이 가졌던 해결하기 어려운 부정적 사건의 대한 적응적 행동으로 이해되었었기 때문에 더욱 문제의식을 가지기 어렵게 만들었을 겁니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5) 집단적 두려움의 순기능
물론 아예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예요. 만약 한 사회가 집단적인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일종의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경각반응형태를 취하게 만들어 더욱 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게 만드는 긍정적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즉 긴장감이 오히려 더욱 우리의 문제해결력을 촉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두려움은 우리의 종교심을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특히 한번 부정적 경험을 해본 사회는 다음에 그 경험에 맞딱뜨렸을 때 더욱 잘 대처할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한번 메르스발생 환자가 생겨서 뉴스나 메스컴에 오르내렸었죠? 그러나 이전만큼 강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사전에 잘 대처했기 때문이지요. 이는 우리가 이전에 처음 메르스를 겪었을 때에 불안정했던 대처방식의 대한 반성과 성찰로 부터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지요.
두려움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대처능력 향상이 되는 과정과 방식
1: 이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속에 있는 잠재적인 위험의 대해 지속적인 준비와 채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두려움이 오면 긴장상태가 되고, 이는 마치 맹수가 올 것에 대비하여 신체를 경각반응의 단계로 만드는 것과 같다. 즉, 문제의 대한 준비와 채비를 하게 한다
2: 그것은 문제를 집중하게 하고 사회가 그러한 신호와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한다. 즉 1단계의 경각반응이 되면 이제 우리는 문제를 집중하게 되고 그 문제에 예민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언제라도 반응할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한다.
3: 이제 이 문제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참여, 연대, 응집력이 증가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개인과 사회 둘 다에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강력한 적 앞에서는 모두가 뜻을 모았던 때가 역사 속에서 흔하게 보여진다. 예컨데 동탁을 적군으로 하였을 때 삼국의 수장들이 모두 힘을 합쳤던 것처럼
4: 이제 사회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국가와 사회의 적군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두려움에 대처한다.
6) 집단적 두려움의 부정적 기능
ㄱ, 집단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사회적으로 경직된 신념을 가지게 합니다. 물론 이것이 부정적 사건의 대한 적응적행동이겠지만 부정적 사고는 우리가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부정적 사건은 그 사건에 주목되게 하고 초점을 맞추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이는 경직된 사고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희망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을 찾는데 어려움을 가지게 하지요. 매슬로우는 “두려움을 증가시키는 모든 심리,사회적 요소들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충동이나 욕구들을 잘라내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부정적 사건에 의해 경험되는 부정적 정서는 우리를 그 상태로 고착되게 만들어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게 만듭니다.
ㄴ, 과거의 경험들에 의해 현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게 되면 과거 경험에 의해 자동적이고 충동적인 사고와 행동을 계속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에 기반한 전망과 기대를 품게 하지요. 현실에 기반한 미래가 아닌, 과거의 경험에 고착된 상태로의 미래를 지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대한 새롭고 창조적 대안을 막는거죠.
ㄷ, 이렇게 되면 우리는 위협과 위험의 싸인을 더욱 크거나 작게 왜곡하여 해석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괜찮았으니 이 사건도 괜찮겠지 라고 받아들이게 하거나, 반대로 이전에 이렇게 큰 문제였기 때문에 현재도 이럴 것이라는 사고로 고착되게 하는 거죠.
ㄹ, 이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대한 불신과 부당함을 가지게 합니다. 부정적 사건에 과한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죠.
ㅁ, 부정적 사건은 내집단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부정적으로 흐르게 되면 외부 집단의 대한 강력한 공격성으로 발현되게 됩니다. 폭력이 적응적 행동이 되버리는 거죠. 그리고 이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싸이클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유대인을 우리 땅에서 죽여버리는 게 차선책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독일처럼요.
7) 평화로 가아가기,
-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긴 여정에 들어서게 될 때, 우리는 강력한 라이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라이벌에 의해 집단적 두려움을 해소하기가 참 어렵게 되지요. 가장 쉬운 예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물질적인 비용이 없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럼 그 문제를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겠죠? 그럼 해결하기도 어려워지는 겁니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확실하고,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이뤄나갈 것인가, 실용적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어떤 지도적 사고를 해야 하는가, 어떤 정보를 얻어야 하는가 등등.. 그리고 이같은 기반을 가진 상태로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고 추구해야 하는 겁니다. 단순히 평화를 찾고 싶다는 추상적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건설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정말로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첫번째 단계는 이러한 노력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죠.
4. OVERCOMEING THE FEAR. THREAT, DANGER.
1) 그렇다면 이제 희망을 가지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서 논의해봅시다. 어떻게하면 우리는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ㄱ, 희망을 가지기 위한 정신적 요소: 예측과 기대, 뚜렷한 목표, 창조적 상상과 생각, 대안적 방안들의 대한 계획과 심사숙고.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며 불확실한 방안의 대한 의견들에 대해서도 관용과 용인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즉 경청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을 알기는 합니다만 사실 이것이 실제 두려움을 주는 상황에서 발현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러한 과정은 생각, 평가, 사색, 문제해결을 위한 실제적 반영의 노력에 근거합니다. 즉, 갈등이 찾아오게 될 때 순간적이고 자동적인 일차적 정서를 잠잠히 들여다보고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일차적 정서는 자동적인 사고와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지요. 이러한 행동은 우리가 갈등을 해결하는 데 쓰이는 애너지를 줄여주고 생산적 시간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참 이것은 어렵죠, 왜냐하면 우리는 천성적으로 두려움에 대한 자동적 반응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볼까요? 눈 앞에 곰을 맞딱뜨린 상황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자동적 반응은 그대로 굳어버리게되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찬찬히 곰을 만났을때 대처하는 메뉴얼을 기억하고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렇지만 이게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죠. 충분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숙지하면 그만큼 더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갈등적 상황의 대한 일차적 반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꾸준히 침착하게 그 방법을 들여야보고 사색하는 과정을 연습해야 하는 겁니다. 이는 우리의 기질과 천성과의 싸움이며 이성적이고 합리적 상황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요소로부터 우리의 이성과 지성과 사고를 지켜내는 싸움입니다.
ㄴ, 자동적 반응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간단히 말해, 자동적 반응의 극복방법은 능력, 기술, 행동의 개발을 위한 훈련과 숙달입니다. 현상의 대한 비판적 사고, 대안적 방법의 탐구,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죠. 특히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느 반드시 개인의 도덕성이 개발되어야 합니다.(부정적 경험과 정서는 부정적 매커니즘으로 대응한다라는 프로세스에 제갈을 물리게 하고 조절할 수 있게 한다.)도덕적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들은 갈등을 만났을 때 그 갈등 상황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기장 기본이되고 기초가 되는 방법들의 대한 의견들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도덕성을 인성이라고 보고, 이 인성의 기준을 경청이라고 했을 때, 이 경청의 자세는 편협되거나 편파적이지 않고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기준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부정적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다시 그 부정적 경험에 기반한 부정적 동기가 발생하게 되는 싸이클이 생깁니다. 나치가 부정적 사건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대응한 것은 그만큼 사회적 불안을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따라서 도덕성은 개인의 인성과 윤리의식의 고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회 구성원들이 긍정적인 대안을 서로 협력해서 찾을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ㄷ, 반영적 체계의 강화: 반영적 체계의 강화라는 것은 개인이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체계와 그 이외의 것들간의 비교를 할 수 있는 힘을 발전시키게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 현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반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사적 체계는 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합리적 사고체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충분한 반사적 체계의 강화가 이뤄져야지 개인은 문제의 대한 통찰력, 복잡성의 대처, 발견되는 신호에 대한 민감성등을 훈련할 수 있는 겁니다.
ㄹ, 평가적 기준과 표준의 기능
- 이것은 일종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것에 더 우선을 둘 것이냐,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기준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사회가 가진 평가기준은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평가의 원칙과 기준을 제공하여 주는데,(그런데 이 사회적 평가기준 자체가 왜곡되어있다면? 구성원들은 역시 왜곡된 평가과 해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짐) 이 기본적 원칙이란 집단의 내부와 외부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평가에 모두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우리고 이같은 평가기준의 공유는 우리가 ‘우리’라는 집단의 소속감을 가지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즉 연대감이 있을 때 그 집단의 평가기준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 긍정적인 평가기준을 세운 집단이 있을 때, 이 집단이 구성원들에게 이같은 평가기준을 전달하기 위해서 가장 먼져 필요한 것은 집단의 소속감과 연대감을 증가시키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집단의 평가기준의 차이가 특정한 동기를 이끌어낼 수 있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평가기준에 따라 사회구성원들이 행동하는 과정까지 이끌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이상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사회적 이상과 구성원들이 소망하는 바와 관련이 없다면 당연히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고 평가기준을 행동화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겠죠. 따라서 그 평가기준이 우리의 이상과 사회적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면 강력한 동기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화로 연결되게 될 것입니다.
ㅁ,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해석
- 평가기준은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 집단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따라서 갈등을 해결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을 때 이 평가기준의 차이, 그리고 해석의 차이를 최대한 좁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복잡하고, 포괄적이고 특별하고 어렵죠. 그러나 이같은 차이가 좁혀진 뒤에야 비로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에 맞딲드리게 되었을 때에 개인의 반영능력(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서 문제의 대한 평가능력도 달라지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반영능력은 위협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있고, 새롭고, 창조적인 목표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기능들의 대해 판단하게하고 평가하게 하는 심판자역활을 하게 될것입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이같은 개개인의 반영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으며 이 차이를 좁혀나가야 합니다. 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 문제를 잘 해결할 까요, 아니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까요. 이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은 문제의 대한 평가를 올바르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이들에게 정보를 왜곡해서 전달해선 안되지요. 왜냐하면 정보가 왜곡되면 이에 따라 개인들 역시 현실을 왜곡해서 반영하게 될 것이니까요. 그럼 문제의 대한 평가도 왜곡될 것이고 이에 따르는 대안적 방법들은 거의 모두 왜곡될 겁니다. 모두가 왜곡되지 않고 상황을 해석하는 반영능력의 강화,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2) 희망을 얻기 위한 개인적 능력과 동기를 얻기 위한 방법: 신념의 교육과 사회화
ㄱ, 가치체계의 형성(평화 이데올로기 형성): 가치체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높은 정신적 활동이 필요하며 한 집단에 속해있는 구성원들의 공통된 참여와 노력과 동기의 형성이 필요합니다. 신념이라 할 수 있는 평가기준의 전파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를 필수로 요구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얻고자 하는 긴 여정에 들어선 사회가 첫번째로 해야할 것은 이같은 이데올로기의 설립입니다. 그러나 이데올리기의 설립은 첫번째이기도 하지만 가장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 곧 긍정적 신념과 이에 따른 사고, 행동의 매커니즘 발견이라는 목표 그 자체이기도 하지요. 이 이데올로기는 신념체계, 관념체계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어쨌든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회는 자신들이 바라는 평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의 대한 확실한 이데올리기와 신념을 세워야 합니다. 나치에게 평화의 이데올로기는 돈, 전쟁, 무기, 유대인학살과 자본탈취등이지요. 그때에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같은 것들이 곧 평화였을 겁니다. 이처럼 한 사회가 어떤 평화를 바라는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의 대한 평가, 신념, 인식을 확실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평화를 위한 명백하고 강력한 근거(와 데이터, 정보)에 기반하여야 합니다. 즉, 이데올로기를 세우자! 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강력한 이상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또 행동화되고 실제 현실에서 가능한 방법들을 탐구하는 등의 과정이 모두 포함된 이데올로기의 형성만이 진정 평화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역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신념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신념은 명확하고 구체적이여야 하며, 평화를 위하는 길에 투입될 비용과 희생이 어느정도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꼭 이뤄내겠다는 집단적인 갈망이 존재해야 하며, 추상적이 아닌 명확하고 뚜렷한 기대, 전망, 노력, 투자, 희생, 정보, 사고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현실 반영적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것이 평화를 위해 가장 먼져 해야할 일이며 동시에 목적으로 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신념이 바뀌면 사회 구성원들의 매커니즘이 바뀌게 되고, 그것이 다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 정서가 전파되었던 것처럼 희망도 그렇게 전파될 겁니다. 그리고 이같은 신념은 한 사회에서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끝없이 학습되기 때문에 교육, 사회화를 통해 신념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야가 하는 것입니다.
ㄴ, 평화이데올로기 강화법
- 평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 입니다. 자신들의 신념을 되돌아보고, 다른 존재의 신념을 수용할 줄 아는 것,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수년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대편의 신념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개별성과 개성과 특성을 받아들이는 것. 사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 조선시대때 청나라의 발전을 그저 오랑캐의 헛짓이라고만 받아들였었지요. 그들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오랑캐의 헛짓으로 봤었던 것입니다. 지금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앞서나간 행동이였다는 것을 알지만요. 이처럼 이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대방의 신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회의 어느 측면에 세팅할 수 있는 수용력이 키워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져 자신들이 가진 자아중심,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를 깨닫고 그 신념을 심사숙고하고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며 다른 존재가 지니는 욕구에 민감성을 키우고 자기 스스로의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자신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것으로 부터 형성된 신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는 갈등이 존재하는 동안에 두려움 지향에 계속 힘을 실어주었던 집단적 기억들을 검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에 자신들의 집단에서 억압(이러한 억압은 두려움이 기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였겠죠)되었었던 측면에 대한 노출, 타집단의 대한 측면의 노출, 이 두가지 측면에서의 노출이 이뤄져야 합니다. 쉽게말해 수면 아래에 잠겨있는 제한된 요소들을 그 위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다른 집단의 요소들도 받아들이는 걸 말하는 거죠. 이같은 노출을 위해서는 신화적이고 근거가 없는 이야기와 사실의 대한 믿음을 깨야만 합니다.
ㄷ, 새로운 신념을 평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
- 새로운 신념을 가장 선두에 이끄는 존재들은 사실 사회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실 사회의 지도층이 변해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집단정서가 흐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신념을 전파하려고 하여도 사회의 응집력과 결속력이 부재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전달해내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전파되는 가운데 왜곡될 것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강력한 존재가 확실하고 단호하며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특정 신념을 선언하고 확립할 필요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신념. 평화를 향한 신념은 우선 사회의 앨리트들과 제도, 기관으로 부터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사회의 최소한의 영역에 존재하는 자들의 지지도 얻어야 합니다. 특히 메스미디어, 사회적 의사소통의 창, 사회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신념의 체계를 퍼뜨리고 전달할 수 있는 기관들의 역활이 중요합니다. 또 이러한 매체에서 그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반복적으로 전파하고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고요. 이러한과정을 통해 사회전반에 형성되게 되는 평화 이데올로기, 신념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 행동의 매커니즘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고 문제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프리즘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제공된 새로운 프리즘에 따라 정보를 새롭게 평가하게 될 것이지요. 두려움을 주는 사건에 대해서 이전에 해왔던 대로의 평가가 아닌, 새로운 평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근본적으로 우리가 평화에 이를 수 있는 길입니다. 이를 위해서 사회, 집단, 개개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노력해야 함은 더 이상 덧붙일 말이 필요가 없는 이야기지요.
ㄹ, 평화 이데올로기의 결과는 바로 경제성장, 투자증가, 개별 경제상황 개선, 폭력의 중단,사회적 평온함과 안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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