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과정을 마치고 겨울 방학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1학년때 인턴할 때 케이스 한 건이 문제가 생겨서 그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는 거였는데
내가 인턴하면서 한 클라이언트와 상담하다가 개인력을 조사하였는데 기독교라고 하면서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녔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교회이름을 이야기하는 데 내가 실수로 그 교회 내가 다니는 교회인데라고 이야기를 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한번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 클라이언트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것이 발각되어 내가 어쩔 수 없이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클라이언트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신고했다고 앙심을 품고는 기관에 내가 자기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고 슈버바이저에게 모함을 한 것이 었다.
그 문제는 미국에서는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쫏겨날 사안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문제 담당 교수님이랑 면담을 1시간 가량 했다... 다행이 지도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드니 최대한 돕겠다고 하셨다... 학생문제 담당교수님은 카톨릭신자였는데 나에게 자신의 신앙을 클라이언트에게 말하면 안?다고 1시간이상
설득을 하셨다... 나와 교수님과 철학논쟁끝에 나는 그냥 반쯤 양보하고 그 교수님도 반쯤 양보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는 못한 상태로 어정쩔하게 그냥
서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확인했지만 그 분도 나를 그 문제로 학교에서 쫏아내기는 너무 심한 처사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지도교수님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그냥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약속을 하고 다행이 잘 넘어가게 되었다... 아마도 지도교수님의 빽이 아니었으면 쫏겨났을 거다..
그렇게 2학년을 구사일생으로 학교에 남아서 지속하게 되었다...
2학년때는 아시안을 위한 기관에서 상담치료사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20시간씩 두 학기동안 인턴을 했다... 역시 주말에는 교회에 다니고 저녁에 일주일에
한번 신학교 수업 청강하고... 지도교수님 조교도 일주일에 10시간씩 하면서...
지도교수님이 담당하는 CIP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이 독일과 한국과 아프리카에서 와서 토요일날은 그 사람들 기관견학시키고...
2학년때는 졸업시험때문에 모두들 긴장감이 돌았다. 한 두 페이지 정도의 케이스를 받아서 우리가 배운 모든 이론들과 지식들을 사용해서
사정을 하고 개입계획을 세우는 게 시험인데 10페이지 이상을 4시간 동안 써 내야하고 70%정도만 1차에서 합격하기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했다...
나는 특히나 영작때문에 고민스러웠는데 한 해 선배한국 언니가 1차에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실천기술론 수업시간에도 졸업시험 연습을 하였는데 연습답안에서 교수님께 B+을 받아서 기뻤다... 미국 학생들도 D나 F를 받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정도면 무지하게 안심되는 점수였다...
그러던 중 인턴하는 기관에서 하루는 직원회의를 마치고 다른 문화에 대한 세미나를 하고 싶은데 나보고 한국문화에 대한 세미나를 해 달라고 하였다.
마침 CIP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후배 두 명이 와서 인턴을 하던 차라 세 명이서 할 수 있었다... 후배들은 영어를 잘 못하니까 한복을 입고 시현을
하고 여러가지로 거들고 나가 주로 이야기를 하고 그런 식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해서 그 기관의 상담가들이 한국인 클라이언트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 30명 정도의 직원들이 참석했다.. 그 중에서 몇 명은 백인이었고 동양계가 많았고 흑인계도 있었고... 그런데 내 슈퍼바이저는 한국인
입양아였던 여성이었는데 마침 그날 다른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세미나를 끝내고 나서 그 다음날 슈버바이저가 나를 불렀다... 이유는 한 베트남계
상담가가 내가 세미나때 내가 미국에 처음와서 문화적 차이때문에 충격받은 것을 설명하면서 LA 공항에서 막 내려서 다양한 모습의 미국인들을 보고는 에이리언(외국인, 외계인으로 번역됨)들 처럼 느꼈다고 말한 것때문에 내가 미국인들을 차별했다고 슈퍼바이저에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차별문제는 미국에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내가 만일 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인정되면 바로 인턴에서 쫏겨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문제는 첫째로는 에이리언이라는 단어가 참 여러가지로 쓰이는 것이었다... 내가 말할 때는 외계인들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는데 그냥 아무런 차별적인 의미가 없이
나랑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의미였는데 이 단어가 또 내가 미국에서 받은 외국인 증명서에도 에이리언카드라고 되어있어서 만일 그 단어 자체가 차별적인 단어라면
내가 먼저 공식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고소해야할 문제였다.
또 그 단어는 멕시코 같은 곳에서 불법으로 밀입국한 사람들을 가르키거나 인간이 아닌 보다 저급한 괴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었는데 그 베트남계 상담가는 나보다
지위가 높았고 슈퍼바이저 급이였는데 자기는 가장 부정적인 의미로 내가 그 단어를 사용해서 거기에 참석했던 동양계가 아닌 백인들을 내가 차별하고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고 모함한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아직 영어도 완벽하게 못하고 작고 힘없는 동양여자인 내가 기득권을 가진 백인 상담가를 차별했다고 하는 말이 참 어불성설로
들였지만 그 베트남계 상담가는 워낙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사회복지사들이 원래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므로...) 내 슈버바이저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내가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나보고 일단 그 베트남께 상담가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그 사람과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자신이 없으면 자기와 함께
세 명이서 만나자고 제안하였는데 내가 그냥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하였다... 내 슈퍼바이저는 용감해서 좋다고 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그 베트남 상담가와 만났는데 30분 동안 내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혼자서 자기 말만하더니 막상 내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약속이 있다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내 슈퍼바이저를 만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했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되자 문제가 기관장에게 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래서 전 기관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했다. 내가 어떻게 짧은 혀로 못하는 영어로 나를 변호하고 그 교활하고 악의에 가득하고 지위도 높은 베트남 상담가를 이길 수 있겠냐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이 기관에서도 쫏겨나고 그 일이 소문이 나면 미국에서는 더 이상 아무곳에서도 나를 인턴으로 받아주지 않을 거고
그러면 학교도 졸업못하게 된다고...
그 다음날 부터 그 기관에서 일하던 동양계 상담가들이 나를 매일 찾아왔다. 자기들이 평소에 그 베트남 상담가밑에서
얼마나 학대받고 억울한 일이 많았는지 모두들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은 그 사람에게 잘릴가봐 무서워서 못 덤빈하고 기왕 내가 이렇게 그 사람과
맞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또 나는 인턴이니 잘려도 다른 곳에서 다시 인턴하면 한 학기만 졸업이 늦어지면 되는 거니까 자기들의 억울함도 이번 기회에
풀 수 있도록 확실히 그 베트남 상담가가 쫏겨나게 반격해달라고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그 세미나때 있었던 일이 어땠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억울하게 모함을
당했고 그 상담가가 얼마나 무례하고 못되게 했는지 아주 자세히 써서 탄원서를 기관장에게 올리라고 모두들 부탁했다... 그 탄원서에 자기들 모두 그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사인해 주겠다고 하면서... 내가 보기에는 별말아닌 걸로 시작된 일이 일마만파 커지면서 전기관의 상담가들이 동요하고 감정적으로 되어서 내가 그 폭풍의 핵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베트남 상담가는 나를 공격한 이유가 자기 말에 비추어보면 기독교 적인 냄새가 나는 게 너무 싫고 거북하고 게다가 한국인이라는
나의 모국에 대해서 자기네 국가 출신 사람들이 자기 국가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긍지를 가지고 있고 미국인들보다 내가 전혀
꿀릴게 없다고 하는 당당함이 무척이나 거슬렸는 모양이었다. 다른 상담가들말로는 그 베트남 상담가는
백인들과 자기를 동일시 하면서 백인에게 아부하고 같은 동양계를 무시하고 마치 자기가 백인인줄 생각하고 교만하게 굴고
오히려 백인들 보다 더 동양계를 차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그 베트남 상담가와 다른 모든 동양계 상담가들과의 갈등을 내가 떠안고 대리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래서 내 작문을 돕는 퇴직한 교수님이랑 열심히 탄원서를 작성했다... 내 슈퍼바이저와 기관장에게 그 탄원서를 보냈다... 상담가들의 서명과 함께...
결국 그 일은 없었던 걸로 마무리 되었다... 기관장은 그 베트남 상담가가 평소에 워낙 아부를 잘 하는 편이라 그 사람이 이 문제로 쫏겨날 정도의 사안이었지만
그냥 무마시켰다... 그래서 다른 상담가들은 나에게 용기있게 탄원서를 써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좋아하였지만 그 일로 그 베트남 상담가를 미워하는 분위기가
겉으로 드러나고 모두들 단합해서 그 사람들 왕따시켰다... 결국 몇 달후에 그 베트남 상담가가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기관의 대부분의 상담가들이 나에게 잘해주고 점심을 매일 서로 돌아가면서 싸가지고 와서 나보고 먹으라고 하였다... 내 작문을 도와주시던
퇴직 교수님도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나보고 작지만 참 용감하다고 칭찬하셨다...
그렇게 인턴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시험도 무사히 통과하였다... 그 일 외에도 학교에서 또 한가지 사건이 발생해서 학교당국에 탄원서를 쓰고 우리 학과 모든
교수님들이 나때문에 회의를 매주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일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잘 넘어가게 해 주셨다... 아마 내가 그 학교에서 석사과정하면서
가장 큰 문제를 많이 일으킨 학생일 것이다... 그래도 모두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게 결국 기적적으로 밝혀져서 잘 마무리되고 학교내에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구별되게 되었다... 나를 주로 미워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에게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우리 나라의 대중의 적이라고 까지 하였다... 정말 오싹한 분위기였다... 아마도 내가 가장 자유주의적인 켈리포니아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프가니스탄 선교사 납치 문제이후에 드러나는 반기독교 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그 때가 떠오르곤 한다...
앞으로는 아마도 그런 분위기가 어쩌면 갈 수록 심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의를 이루실 줄로 믿는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바다가 된 샌디에고 (0) | 2007.10.27 |
---|---|
특별한 방법으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0) | 2007.10.18 |
얼떨결에 정신분열증 환자가 나은 이야기... (0) | 2007.10.05 |
교통사고로 인한 가족의 상실... (0) | 2007.10.01 |
추석날에 뒷산에 드라이브를 다녀오면서... (0) | 2007.09.25 |